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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경 독립운동가

by 7거시리 2025.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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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김원경(1898.11.13~1981.11.20)은 일제강점기 여성 독립운동가로서, 3·1운동 참여와 애국부인회 활동을 통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며 민족 독립을 위해 헌신한 인물입니다.

 

생애와 성장 배경

김원경 선생은 서울 무교동에서 태어나 이화학당을 졸업하였습니다. 당시 여성의 교육 기회가 제한적이었던 시대에 학문을 익히고 사회 활동에 참여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배경은 훗날 그녀가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3·1운동과 초기 활동

1919년 3월, 전국적으로 일어난 3·1독립운동에 참여한 김원경 선생은 같은 해 4월, 김숙자·백성현·경하순·김희옥 등과 함께 대조선독립애국부인회를 조직하였습니다. 이 단체는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주축이 되어 임시정부를 지원하고,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상해 활동과 애국부인회

1919년 5월, 김원경 선생은 애국부인회의 특사로 상해에 파견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같은 해 9월, 혈성단과 통합하여 새로운 애국부인회를 조직하였고, 이화숙을 회장으로 추대하면서 본인은 부회장으로 활동했습니다. 이후 1920년 2월에는 회장으로 선출되어 단체를 이끌며 임시정부 지원에 앞장섰습니다.

 

국제 무대에서의 활동

1922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극동인민대표회의에 권애라와 함께 한국 대표로 참석하여 각국 대표들에게 한국의 독립을 호소했습니다. 이는 한국 여성 독립운동가가 국제 무대에서 독립 의지를 직접 알린 중요한 사례로 평가됩니다.

 

임시정부 지원과 이후 활동

김원경 선생은 임시정부 요인이었던 최창식과 결혼하여 임시정부의 활동을 뒷받침하였으며, 1930년대에는 고려공산당의 여성 청년 회원으로도 활동했습니다. 그녀의 활동은 단순히 독립운동에 국한되지 않고, 교민 사회의 복지 향상과 여성의 사회적 역할 확대에도 기여했습니다.

 

독립운동가로 변신한 여학생들…속옷에 고향 부모 이름까지 써 붙여|동아일보

 

독립운동가로 변신한 여학생들…속옷에 고향 부모 이름까지 써 붙여

“(1919년 1월 21일 광무황제께서 붕어한 이후) 2개월간 우리는 여러 준비를 하였다. 학우의 주소를 조사하며, 재정을 구취(鳩聚)하며, 일인(日人)의 눈을 피해 비밀히 동지를 단속하였다. 혹 (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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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서훈과 평가

정부는 김원경 선생의 공적을 인정하여 1963년 대통령 표창을 수여하였습니다. 그녀의 삶은 여성 독립운동가로서의 희생과 헌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오늘날까지도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독립운동가 김원경은 여성으로서 쉽지 않았던 시대적 한계를 넘어, 3·1운동 참여, 애국부인회 조직, 국제 무대에서의 독립 호소, 임시정부 지원 등 다방면에서 활약한 인물입니다. 그녀의 삶은 단순한 개인의 역사를 넘어, 한국 독립운동사 속에서 여성의 역할과 헌신을 증명하는 중요한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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